우울증을 앓다

웃고 있어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해피SJ 2024. 9. 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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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나를 충동적으로 만들었다. 화가 나면 참을 수 없었고 그 화는 고스란히 폭발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점점 나는 날카롭고 뾰족한 인간 송곳이 되어 갔다. 거울을 보면 우울하거나 화가 나 씩씩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식욕이 없어 체중은 점차 줄어갔고 얼굴뼈 형태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뼈말라족이 되어갔다. 가끔 그때 사진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 정도이다. 

출처 : [피너츠 짤방 대방출] 찰리브라운 명대사 명언..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우울증 약의 효과는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4주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동안 나는 아주 조심스러운 살얼음판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이 살얼음판 위에 나 혼자 서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나의 우울증의 심각성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다. 나는 점점 더 가족 내에서 고립되어 갔다. 오로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나의 병을 알고 격려해 주고 걱정해 주는 병원 동료들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하루는 무슨 일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문제로 남편과 싸움을 했다. 나는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잠들 수 없어서 술을 마셨고 만취가 되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나에 대한 연민과 자살사고였다. 순식간이었고 죽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답이 없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부엌에 있던 칼로 손목을 그었다. 피가 났고 남편이 놀라 칼을 뺏어 들었다. 그리곤 블랙아웃이 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밤새 엉엉 울었던 모양인지 아침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손목의 상처는 봉합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 깨달은 것은 죽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이었다. 

 

우울증 약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나는 조금씩 웃음을 찾아갔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먹구름도 어느 정도 걷히고 자살사고도 조금씩 사라졌다. 일하는 것도 조금 수월해졌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태생적으로 나는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약물의 효과가 나타나니 그것이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우울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너무 놀라웠고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출처 : [스누피짤] 우울, 시무룩, 슬플 때, 자존감..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우울증 환자로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었다. 웃다가도 슬픈 음악을 들으면 눈물이 쏟아졌다. 불현듯 죽고 싶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음악을 듣다가, 일을 하다가도 죽음을 생각했다.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 벗어나고 싶다.. 정말 이곳이 너무 지긋지긋하다..'

 

지금도 거울을 들여다 보면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이 슬프다. 내 눈에서는 뭔지 모를 슬픔이 자라고 있다. 아직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온몸이 여전히 아프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우울증 약을 챙겨 먹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늘 자살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붙어 다닌다. 오늘도 그 그림자를 달고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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